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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의 집’ 봉사 12년째 맞은 대한여한의사회(민족의학신문 제823호)
작성자 womma
조회수 4,838
날짜 2011-09-30
‘나눔의 집’ 봉사 12년째 맞은 대한여한의사회
\" \'기부’와 ‘배움’에 대한 열정 존경합니다”
newsdaybox_top.gif\" [823호] 2011년 09월 28일 (수) 정지윤 기자 btn_sendmail.gif\"zam762@mjmedi.com newsdaybox_dn.gif\"

 

해외의료봉사, 한국이주여성 인권센터 의료봉사, 위안부 할머니 의료봉사 등을 통해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여성들의 든든한 의료지원군을 자처해 온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류은경)가 여성가족부와 공동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맞춤형 한방 진료’를 추진 중”이라며 소식을 전해왔다.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특성상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함과 동시에 만성 노인성 질환자임을 고려해, 여한의사회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방진료 주치의’가 될 예정이다. 생존자 69명 중 고령으로 인한 거동 불편자가 전체의 72%에 달하고 64%가 만성 노인성질환에 시달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대한여한의사회 류경주(47·송파구 백제한의원) 의무이사는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말 할머니 같다”며, 퇴촌에 위치한 ‘나눔의 집’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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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한의사들의 봉사참여를 당부하는 류경주 의무이사

‘나눔의 집’ 봉사 올해로 12년 째

2000년부터 시작한 여한의사회의 ‘나눔의 집’ 봉사는 올해로 12년 째를 맞았다. 평균 3명의 한의사들이 두 달에 한 번, 한방 파스와 약제를 준비해서 방문한다. 주된 시술은 침구 치료와 부항 요법. 처음에는 “몇 번 오다 말겠지”하며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할머니들이 지금은 “왜 자주 안 오냐”며 성화다.

 “여한의사회에서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의무이사직을 맡고 있어요. 위안부 할머님들의 평균 연세가 86세에요. 고령이시지요. 역사의 피해자로 아픔이 큰데 몸까지 아프면 얼마나 서럽겠어요. 그래서 신경을 많이 써요. 갈 때마다 약제도 준비해서 가고. 이젠 ‘기다렸다’고 반기시지요. 친해져서 정이 담뿍 들어버렸어요.”

류경주 의무 이사의 말이다. 그런데, “‘나눔의 집’에 할머니들이 몇 분 안계세요. 지금 여덟 분 계시거든요. 지난 5월에 박옥련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마음이 참… 착잡하더라고요”라고 말하는 류 이사의 얼굴이 흐려졌다.

박옥련 할머니를 치료할 때였다. 의사소통이 힘들고 치매증상을 보이던 박 할머니에게 침 치료를 할 때 무심코 “할머니 침 아파? 많이 아파?”라면서 혼잣말을 하던 여한의사에게 박 할머니는 “그럼 아프지, 안 아프냐”라고 불쑥 호통을 쳤다고. 불호령에도 아랑곳없이 할머니가 호전됐다는 기쁨에 함께 봉사 갔던 여한의사들은 한바탕 깔깔 거리며 웃었다.

“사실 봉사라고 생각은 안 해요. 여자라는 점에서 큰 공통점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가면 할머니들이 편하게 여기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나이 들면 아이 같아진다고 하잖아요? 나눔의 집 할머님들도 똑같아요(웃음). 그럼 위로도 해드리고 말씀에 맞장구도 치고 하지요. 그럼 또 기뻐하시고… 저도 기분 좋아지고요. 그래서 딱히 봉사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국가연금 모아 기부하시는 할머니

“봉사를 구분하며 활동하지 않고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나눔의 집에 가면, 할머니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아요. 여자로써 견디기 힘든 상처와 세상의 눈이 무서워 숨죽이며 살아온 할머니들이 얼핏 ‘피해자’로 사실 것 같지만 김금자 할머니는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을 모아 일정금액이 모이면 장학금도 기부하시고 하세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하는 류 원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곳에 이옥선 할머니라고 계세요. 집이 너무 가난해서 공부하는 것은 꿈도 못 꾸셨다고 해요. 그러다가 (정신대에) 끌려가신 거예요. 흔히 자신이 넘지 못할 곤경에 빠지면 남 탓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옥선 할머니는 그렇지 않으셨어요.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대요. 그래서 그 후로 계속 책 읽으시고, 도서관 다니시고, 국회도서관 가서 논문도 찾아보고 그러세요. ‘자기주도학습’을 완벽히 실천하시는 거죠. 요새는 영어 공부하시거든요. 할머니가 영어 책을 펼쳐놓고 계시면 제가 옆에 가서 그래요. 제발 할머니 좀 보고 우리 애들이 본받아야 한다고(웃음).”

“많이 참여해서 자주 방문했으면 해요”

“자녀에게 봉사활동을 보여주는 것이 산교육 아니겠냐”며 반문한 류 이사는 여한의사회의 의무의사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봉사 인원이 참 부족합니다. 매번 참가하는 한의사는 4~5명 정도인데 더 많으면 좀 더 자주 방문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한의사회는 2004년부터 봉사를 시작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1년에 4회 방문한다. 봉사 내용은 ‘나눔의 집’과 동일하지만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의 특성상 진료시간이 더 긴데다가 그들의 고충을 보듬으며 치료를 하기엔 현재 봉사 인원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류 이사의 생각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말은 통하지 않지만 ‘여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머나먼 타국에 시집 온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겠냐며 고개를 끄덕이는 류 이사는 지금도 사회에서 소외받은 채 의료봉사를 기다리고 있을 이주여성들을 위해 많은 여한의사들의 참여를 부탁한다며 거듭 당부했다.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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