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나는봄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이하 나는봄센터)에서 위기 여성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한의약 진료를 진행하고 있는 여한의사회 김지희 총무이사와 김윤민 의무이사를 만나봤다.
Q. ‘나는봄센터’는 어떤 곳인가?
김지희: 나는봄센터는 지난 ‘13년 전국 최초로 설립된 십대 여성 건강센터로, 서울시에서 여성 청소년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성매매, 임신, 폭력과 같은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여성 청소년들에게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운영되는 곳이다. 나는봄은 말 그대로 I’m spring, 봄과 생명의 기운이 이미 우리 안에서 피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활기차고 기운찬 이름이다.
김윤민: 나는봄 마스코트 ‘보미’를 보면 알겠지만, 에너지 넘치는 눈빛에서 느껴지듯 건강하고 당찬 소녀다. 한마디로 십대 여성들이 처해있는 위기상황에서 주체적으로 용감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센터다.
Q. 의료지원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김지희: 대한한의사협회 소아청소년위원회 위원도 겸임하고 있는데, 사실 지난해 회의에서부터 나는봄센터에 의료지원을 나가는 여한의사 모집 안건이 나왔었다. 그러던 와중에 여한의사회와 소청위, 나는봄센터가 MOU를 체결한 것이 귀한 인연이 돼 의료지원에 참여하게 됐다.
김윤민: 여한이 나는봄과 MOU를 맺은 후 신청자를 받는 공지가 올라왔었는데, 그 공지를 보고 휴진날인 목요일에 의료지원 신청을 했다. 내심 매주 목요일마다 혼자 의료지원을 나가게 될까봐 걱정됐었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여한의사 회원들이 신청을 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의료지원을 나가고 있다.
Q. 한의원에서 진료할 때와 다른 점은?
김지희: 나는봄센터에서의 진료는 더 친밀한 느낌이 있다. 환자층이 주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십대 후반의 여성청소년과 쉼터나 가정에서 이제 막 자립한 20대 초반 여성들이다보니 불면, 우울증, 공황장애 등 신경정신과적 요인을 많이 갖고 있다. 또한 신체화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는데, 기본적으로 목, 어깨, 허리는 거의 다 굳어있는 경우가 많고, 맥을 짚으면 10에 8, 9는 허약한 편이다.
한의원에서 진료할 때처럼 ‘침으로 한 번에 잘 낫게 해준다’는 생각은 버리고, 처음 침을 맞아본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한의약 치료를 친숙하게 해주고 치료 후에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건강관리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많이 접근하고 있다.
Q. 기억에 남는 청소년이 있다면?
김윤민: 친구들이 한의과 진료실로 오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처음부터 한의과 진료를 원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를 따라 오거나 다른 진료를 보러 왔다가 다른 과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오기도 한다.
처음에 친구들이 오면 거의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해주는 친구도 있고 돌아갈 때 츤데레처럼 ‘근데.. 이런 부분이 궁금해요’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도 있다.
아직까지 많은 친구들을 본 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을 들으면 외모, 말투, 증상, 아픈 곳이 다 생각난다. 저만 그 친구들이 다 생각이 나는 게 아니고 친구들 역시 오랜만에 봐도 다 기억을 해주니 참 고마운 일이다.
Q. 한의약 진료가 어떤 도움이 되는지?
김지희: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이 클 때가 많은데 진료하다보면 일반 한의원에 오는 환자들과는 달리 거친 환경 속에서 몸과 마음이 이미 다쳐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로 인해 여러 가지 신체증상이 많은데 불면, 공황장애를 비롯해 설사, 위염, 생리통, 두통이나 식이장애로 인해 폭식증, 거식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의 강점이 몸과 마음을 전인적으로 치료한다는 점인데, 충분한 상담 후에 몸의 상태를 설명해주고, 침·추나 치료와 함께 운동법을 알려준다. 또한 필요한 경우에는 보험 한약도 함께 처방해주고 있다.
나는봄센터에는 산부인과, 치과, 가정의학과 선생님들도 계신데 한의약은 또 다른 부분을 치료해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첩약으로 깊은 진료를 해줘야하는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데, 여건상 첩약 진료가 어려운 부분은 안타까운 마음이다.
Q. 여한의사이기 때문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김윤민: 친구들이 본인을 표현하거나 치료를 받아들이는데 있어 허들이 낮아진다. 치료를 할 때 대면하는 물리적인 측면에선 당연하고 정서적인 면에서의 강점도 크다.
의료지원에 참여하는 여한의사들의 나이대가 다양한데 친구들이 평소에 터놓고 지내는 선생님이랑 비슷한 나이대의 원장님도 있고, 김지희 원장님이나 저처럼 약간 막내이모 같은 나이대 원장님들도 있다.
진료연속성을 위해서 차팅 내용을 공유하는데, 같은 친구가 상담을 했더라도 누가 진료하느냐에 따라 조금 더 어른에게 터놓을 만한 얘기도 있고, 언니에게 물어볼 만한 고민들도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는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 쉽게 얘기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장점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Q. 의료지원 참여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지희: 사실 나는봄센터에 오는 아이들의 대략적인 상황을 듣고 가출청소년 이미지를 떠올렸다. 저는 어렸을 때 공부만 했던 범생이었고 주변 친구들도 그런 아이들이 많아서, 무서운 청소년들이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했었다.
처음 한의진료실에 들어와 삐딱하게 앉아서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하며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며 어떤 부분을 도와줄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러나 본인 마음을 점점 열고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진심으로 마음을 먼저 열고 다가가면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으로 보람차게 진료를 이어나가고 있다.
김윤민: 저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오히려 편하게 갔다. 공감대 형성도 비교적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봉사하는 입장에서도, 진료를 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도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부도 더 많이 하게 되니까 아이들과 함께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Q. 향후 계획은?
김지희: 앞으로도 여한의사회는 전국 각지의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곳에 따뜻한 마음과 친절한 의술로 찾아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이주여성 및 성폭력 트라우마 피해자, 탈북 청소년 쉼터 등에서 봉사를 해왔고 앞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장애인 봉사도 이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