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 성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한의의료지원사업이 높은 만족도와 실질적인 치료 효과를 바탕으로 해마다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2025년 사업 추진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공동대표 박선경, 이하 전성협)는 12일 간담회를 갖고, 올해 한의의료지원 사업의 운영 방향을 논의했다. 김윤나 학술이사, 이채은 총무이사가 함께한 이날 자리에서는 지원 개정을 포함한 제도 개선 필요성과 함께, 현장에서 마주한 다양한 치료 사례와 어려움에 대한 심도 깊은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신체화 증상 개선에 유효한 한의진료 “맞춤 치료 가능해야”
박소연 회장은 “정신적 트라우마는 신체화 증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무엇보다 피해자 개개인에게 맞춘 치료가 필요하다”며 “한의진료는 한의약적 다양한 방법과 상담 등을 통해 피해자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까지 도모할 수 있는 통합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다만 현행 지침은 ‘고가의 한약’은 지원이 불가하다고 명시돼 있는데, 고가 기준이 모호해 실제 현장에서 꼭 필요한 맞춤형 첩약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약침이나 탕약이 꼭 필요한 경우에도 비급여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의료 선택권이 제한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신적인 문제가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날 때, 그 양상은 매우 다양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무엇보다 개인에게 맞춘 처방이 중요하다”며 “보험 급여 항목의 약이 처방되기도 하지만 다양한 증상에 대하여 피해자 개개인의 상태에 맞는 맞춤형 한약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 이런 제도적 제한이 아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박선경 대표는 이에 “피해자의 실제 회복을 위해서는 필요 치료가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매년 여성가족부가 지침 개정 제안을 받는 시기에 여한의사회와 함께 이 문제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여한의사회 역시 수혜자의 필요성과 전문가 의견을 기반으로 정책 당국을 설득할 방침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한의의료지원이 실질적인 회복으로 이어진 사례도 공유됐다. 박선경 대표는 “성폭력 피해로 정신병원 입원과 일상생활 어려움을 반복하던 발달장애 여성 환자가 1년간 한의치료를 꾸준히 받은 후 감정 조절 능력이 생기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등 큰 변화를 겪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환자는 반복적 폭력으로 불안상태가 극도로 심하여 저녁만 되면 가족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적 혼란을 겪고 아주 작은 자극에도 극도의 불안 증상을 보였지만, 한의 트라우마 치료 이후 “내 불안을 이제는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경우도 있는 등 현장에서 다양한 치료 성공으로 한의약의 트라우마 진료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상담사·활동가 소진도 심각… “현장 지원자도 치료 필요해”
간담회에서는 피해자 지원 현장의 상담사 및 활동가들도 심각한 정서적 소진을 겪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박소연 회장은 “상담사들이 간접 피해와 2차 가해를 경험하며 심리적 부담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위한 치료 지원 확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역의 여성가족재단,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해바라기센터 등에서 상담 역할을 하는 분들의 요청이 많아, 여한의사회는 이러한 현장 활동가들의 요구를 반영해 향후 피해자뿐만 아니라 상담사와 활동가 대상의 지원 체계도 확대 운영될 수 있는 지원 방안이 제도적 뒷받침이 되었으면 하고 이에 여한의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응답자 전원 “긍정 평가”… 2025년 한의의료기관 확대
한의의료지원사업은 2021년부터 시행돼 2024년까지 4차례 진행됐으며, 작년 한 해 동안에는 총 20명의 피해자가 전국 15개 한의의료기관에서 다양한 한의진료를 받았다. 치료 효과에 대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85%가 ‘매우 만족’, 5%가 ‘만족’, 10%가 ‘보통’이라고 답해 전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소연 회장은 “여한의사회의 ‘Trauma informed care를 위한 트라우마 일차진료 전문과정’을 수료한 한의사들이 전국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 전문가 네트워크가 성폭력과 젠더폭력은 물론, 다양한 범죄 피해자의 트라우마 회복에도 효과적으로 활용되길 기대하며 더욱 많은 한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양 기관은 향후 지침 개정과 함께, 지자체 차원의 피해자 치료 지원 확대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박소연 회장은 “정부의 의료지원이 치료 목적을 달성하려면 피해자의 의료 선택권이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면서 “피해자가 믿고 찾을 수 있는 한의원 리스트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정부, 지자체가 연계되어야 피해자의 실질적인 회복이 가능하다”며, “법률지원·상담지원뿐만 아니라 정신적·신체적 치료 지원까지 통합된 회복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여한의사회는 오는 6월까지 성폭력 피해자 대상 한의의료지원사업 신청을 받으며, 전국 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접수된 신청자는 전성협과 여한의사회의 매칭을 거쳐 지정 한의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게 된다. 진료는 올해 말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