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 피해자 중심 진료의 이해와 M&L 심리·신체 통합치료 실습을 통해 한의사들이 ‘몸에서 시작되는 마음의 치유’를 직접 체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는 18일 한의협 대강당에서 ‘2025 Trauma informed care를 위한 트라우마 한의일차진료 전문과정’를 개최, 세 번째 트라우마 치유 전문가 양성에 나섰다.
박소연 회장은 “여한의사회의 정체성은 미충족 의료 대상자와 소외계층을 향한 봉사로, 그동안 보호처분 청소년, 노숙 여성, 폭력 피해 이주여성, 탈북 아동, 미혼모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심신의학적 한의진료를 이어왔다”면서 “우리 사회가 정신적·심리적 위기 상황에 처한 만큼 앞으로 한의사들의 일차의료 트라우마·심리치료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로 3년째 운영 중인 ‘Trauma Informed Care 트라우마 한의일차진료 전문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약 150명의 한의사가 수료했다”며 “이들이 전국 네트워크를 구성해 한의사가 사회의 상처 입은 이웃들에게 보다 전문적이고, 따뜻한 치유의 손길을 전할 수 있도록 지역 단체들과 협력해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여한의사회는 지난 8월부터 온라인을 통해 △Course 1.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기초 다지기 △Course 2. 트라우마 치유의 한의임상 실제 △Course 3.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사회기반 마련 △Course 4.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M&L 심리치료-실전 임상적용 워크북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 데 이어 Course 5 순서로 이날 오프라인 실습을 통해 M&L 치유 기술을 직접 체험하고, 습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교육은 △피해자 중심 진료를 중심 진료를 위한 성폭력의 이해(박선경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M&L심리치료-실전 임상적용 워크북 중심으로(최보윤 보한의원장·M&L Teacher)를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두려움의 몸을 이해하는 순간, 치료는 시작된다”
이날 강의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몸을 다루는 진료는 곧 마음을 회복시키는 출발점”이라며 한의사의 역할을 강조한 박선경 대표는 성폭력의 역사적 맥락부터 피해자들의 심리적 반응, 그리고 한의학이 가진 치유적 가능성까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풀어냈다
박 대표는 “상담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 다수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을 보였는데, 이런 경우 상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면서 “몸의 통증과 긴장,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이 심리적 트라우마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의료적 접근, 특히 신체를 섬세하게 다루는 한의학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 인폼드 케어는 ‘무력한 피해자’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데서 시작된다”며 “피해자의 몸을 진단할 때 그 몸이 겪은 두려움과 통제 상실의 시간을 함께 바라본다면 이미 치료가 시작된 것이며, 한의학적 접근이 피해자에게 새로운 회복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특히 현장에서 처음 한의치료를 경험한 환자들의 치험례를 통해 여한의사회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의진료 후 피해자들이 남긴 피드백에는 “정신과에서 약을 오래 복용해왔는데, 한의원 치료 후 처음으로 숙면을 취했다”, “한의사 선생님들이 몸을 따뜻하게 만져주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다”, “경청의 시간이 치료 그 자체였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박 대표는 “성폭력은 단순한 사건이 아닌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권이 무너지는 경험”이라며 “그 회복은 약물이 아니라 ‘만져지는 돌봄’, ‘믿어주는 시간’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몸-마음을 잇는 치유…“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부터”
이어진 강의에서 최보윤 원장은 “‘트라우마 인폼드 케어를 위한 한의일차진료 전문과정’에서 치유의 출발점은 판단이 아닌 수용, 말이 아닌 경청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트라우마 치료자의 기본 마인드는 상대방의 내면의 빛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보려는 자세로, 관계의 기본은 안전의 장을 구축하고 관계성을 확립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면서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힘, 치료과정의 신비, 관계의 신비라는 선물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실습 교육은 수강생들을 6개 조(실습강사 최보윤·이진화·성승규·신현숙·양홍빈·김보은·김윤나)로 나눠 M&L 심리·신체 통합적 접근을 기반으로 한 실제 임상 적용 훈련에 초점을 맞춰 △리소스 탐색(with Loving Beingness) △리소스 마인드풀니스 △신체감각 마인드풀니스 △마음의 방 그리기 △삼단전 마인드풀니스 등 다섯 가지 과정을 진행했다.
최 원장은 ‘리소스 탐색’을 통해 내담자의 내적·외적·관계적 자원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Loving beingness(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체험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성격, 경험, 재능, 인간관계 등 자신만의 치유 자원을 정리한 데 이어 ‘Loving beingness로 리소스 나누기’ 실습을 통해 치료자와 내담자가 마인드풀니스 상태에서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교감하는 연습을 진행했다.
이어 진행된 ‘리소스 마음챙김 명상’에서 최 원장은 “안전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재현할 수 있는 내적 자원임을 인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자신에게 안전과 평안을 주는 장소를 떠올리고,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신체 감각을 기반으로 한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최보윤 원장의 안내에 따라 참가자들은 △자신 안의 ‘감정의 방’을 인식하고 △우울·불안·분노·감사 등 다양한 감정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떠올린 뒤 △‘마음의 방 그리기’ 실습을 통해 내담자·치료자·관찰자가 함께 마인드풀니스 상태를 경험하며 △마음의 방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수강자들은 치료자로서 그 과정을 평가하지 않고, 그 자체로 ‘러빙 비잉네스’를 유지하며, 내담자의 각 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관찰했으며, 이후 각자가 느낀 통찰을 공유하며 상호 연결의 의미를 되새겼다.
최 원장은 “상대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며 응원하는 ‘안전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재의 상담 장소가 진정한 ‘안심·안전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대한여한의사회는 이날 한의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박선경 대표와 최보윤 원장에게 감사패를, 수강자 전원에게 수료증을 수여했다. 이들은 향후 ‘Trauma Informed Care를 위한 트라우마 한의일차진료 네트워크’ 자격으로 활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