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에 답하고 싶어 연구를 병행하는 임상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딱히 대단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가급적 평생 배우는 자세로 살고 싶다고 생각해 온 것 같아요.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곳을 선호하다 보니 연구를 옆에 두게 됐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한의사회 제3회 미래인재상을 수상한 이지영 일산차병원 암통합진료센터 임상조교수는 연구하는 임상 한의사를 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때 연구냐, 임상이냐 선택해야 할 순간이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연구를 선택했다”며 “차마 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지영 조교수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교를 졸업, 강동경희대학교 한방병원 한방내과에서 일반수련의 및 전문수련의 과정을 거쳤으며, 동병원 한방암센터 임상조교수로 근무하다 현재 일산차병원 암통합진료센터에서 임상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특히 한양방의 통합적 치료가 대두되고 있는 분야인 암 치료에 있어서 한약의 효과를 살펴본 임상연구를 진행, 한의계에서는 흔치 않은 암 관련 국제적인 SCI(E) 학술지에 논문을 다수 발표한 바 있다.
대표적인 연구 업적으로는 암성 피로 치료에 있어서 십전대보탕의 효과를 살펴본 임상논문과 암으로 인한 수면 장애의 치료에 있어서 가미귀비탕의 효과와 안전을 살펴본 임상연구가 있으며, 암 관련 증상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과제에도 참여해 해당 분야의 발전에 적극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Q. 미래인재상 수상 소감.
A. 사실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서류를 제출하면서도 반쯤은 마음을 내려놓고 지원했는데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상 이름이 미래인재상인만큼 앞으로 열심히 정진해서 미래의 인재가 되라는 뜻으로 듣겠다.
그 동안 해온 모든 연구와 논문들은 당연하지만 어느 것도 혼자 쓴 것이 없다. 모두 윤성우 주임교수의 안배 하에 이뤄졌고 의국원들 모두가 함께 수행해온 결과물이며 다양한 의과 협진 없이 성립될 수 없었던 바,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고 도움주신 많은 교수님들과 의국원 분들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싶다.
Q.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연구 분야는?
A. 까다로운 점이 많지만 한약 연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워서 더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학회에서 천왕보심단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학회에 참석했던 중국인이 ‘천왕보심단이 중국의 약인 것을 알고 있냐?’는 질문을 하더라. 그때 ‘아, 연구를 얼른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것, 한국 것을 따지기 전에 누구라도 모두가 활발하게 연구하고 투명하게 공유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Q. 한의계에서는 흔치 않은 암 치료와 관련해 SCI(E)급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비결은?
A. 원래부터 연구에 뜻이 있었고 특히 정리 요약을 하려는 성향이 있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 같다. 훌륭한 지도 교수를 만난 덕이 큰 것 같다.
굳이 비결을 하나 더 꼽자면, 한약은 오랜 경험과 관례 상 모두가 알기에 ‘새롭지가 않다’는 인상이 많다. 가령 십전대보탕은 일상에서도 많이들 접하는 대중적인 한약이고 심지어 몇 달 전에 모 커피 체인점에서도 차로 만들어 내놓을 정도로 모두가 다 안다고 생각하시는 약이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적용해 보려고 하면 암 환자들은 ‘나 암 환자인데 이거 먹어도 되는지?’, ‘안전한지?’, ‘먹으면 어느 정도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등을 궁금해 한다.
그런 부분,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데이터가 필요한 연구가 임상 실제에 가장 가까운 연구라고 생각한다. 해외 학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해 보면 생각 외로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 경우도 많다. 이런 부분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데이터를 입혀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Q. 앞으로 젊은 한의 연구자 및 과학자를 배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A. 운이 좋아 감사하게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있지만 주변의 선후배님들, 젊은 한의 연구자들의 고민들 중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제한적이고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다는 점인 것 같다. 연구를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이 필요하다. 혼자 할 수 있는 연구는 거의 없기도 하고 연구계획서를 쓸 때도 소속 증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 중 하나는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한의 연구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배우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Q. 한의학 현대화, 과학화에 대한 견해.
A. 현대화는 일개 연구자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한 학문과 그와 연결된 체계가 모두 새로워지는 일인 것 같다. 개인별로 정교한 맞춤의학이 가능하다는 점이 한의학의 가장 큰 매력이었지만 현재의 체계와 서로 더 맞춰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이 정도의 효과는 난다, 당연히 어느 정도로 안전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공유 가능한 컨센서스가 필요하고, 그것은 최소한의 근거이지 한의학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컨센서스도 있다면 좋겠다.
지금 하는 연구는 한약을 ‘현대화’하기 위한 연구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조금 더 편하게 한의학적 시술과 한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이미 알고 있는 효과를 요즘의 언어로 재배열하는 과정일 뿐이다. 임상에서는 좀 더 편하게 사용하고 학생들은 좀 더 친숙하게 배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Q. 향후 계획.
A. 언젠가는 암 환자의 완화 의료에 대해 통합의료적인 관점에서 다중 중재가 들어가는 실용적 임상연구를 한번 해보고 싶다. 다만 다중 중재라는 점에서부터 상당히 멀리 둔 목표가 될 것 같고, 아직은 근거 레퍼런스들도 사회심리 쪽에 가깝다. 금연 지도를 위한 다중 중재 정도의 연구밖에 없는 것 같더라. 당장은 할 수 있는 연구부터 해야겠다.